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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악보 대신에 피켓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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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구대분회 작성일20-11-05 00:10 조회5,2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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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1948년 설립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은 각 과의 학과장 주관 아래 시간강사를 채용해 왔다. 이전까지는 기한 없이 강사를 했지만 점차 유학을 갔다가 귀국하는 졸업생들이 많아지자, 1993년 성악과에서 강사 임기를 정해 5년마다 강사를 공개 채용했다. 시기는 다르지만 기악과나 작곡가 같은 다른 학과에서도 5년 임기로 강사들이 채용되었고, 그것은 30년이 가깝게 이어져 온 전통이었다. 최근 교육부의 지침 아래 전국 모든 대학에서 매 학기 계약서를 쓰지만, 그렇다고 강사 임기가 6개월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2007년 부산대에서 강사를 시작한 뒤 9년 동안 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모교의 강사가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2009년 첫 강사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시고 5년을 기다렸다가 2014년 다시 오디션을 치르고 나서야 드디어 서울대학교의 강사가 될 수 있었다. 대학에서 강의한다고 하면 "와우~" 하는 반응이 많다. 그러나 실상 우리는 4대보험이 되지 않는 비정규직이다. 국립대 강사료는 시간당 8만 원 정도고 사립대는 4~5만 원 정도인데, 서울대에서 한 주에 2시간 시수를 하고 받는 돈은 월 64만 원이다. 그 적은 돈에서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등을 제외하고 받는다. 게다가 방학에는 강의가 없기 때문에 음악가들은 연주, 개인 레슨, 지휘 등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진다. 그중에서도 대학 강사는 명예를 위한 것이고, 우리의 직업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똑똑하고, 노래도 잘하는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은 보람이 있었다.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강의를 했고, 강의 후에는 수업에 관한 것이나 유학,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말 후배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간강사법 때문에 음대에서 강사를 다시 뽑는다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아직 1년도 안 됐는데, 오디션이 웬 말이냐?"라고 했더니, 확실한 정보라는 것이었다. 위기감을 느낀 10명의 강사들이 급하게 만나 2시간 회의를 했다. 탄원서와 서명 얘기가 나왔는데 공고도 나지 않은 시점에 오버했다가(도를 넘었다가) 찍히면 어쩌나 걱정하는 사람도 있어서 서명만 받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40여 명의 강사 중 겨우 10여 명의 서명을 받은 상태에서 이틀 후 음악대학 홈페이지에 시간강사 모집 공고가 올라와 버린 것이었다. 우리는 '아, 늦었구나!'라는 생각에 모든 의욕을 잃고 두 손을 놓았다. 그런데 이틀 후 선생님들에게서 시간강사법이 유예될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우리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이틀 만에 41명의 서명을 모아 탄원서와 함께 총장과 음대학장, 교육부총장, 교무처장에게 이메일로 전송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침묵하였고,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던 중 선배의 소개로 교수노조 관계자를 만나 한국비정규교수노조(이하 한교조)와 연락이 닿았다. 평생 화려하게 무대에서 노래만 하고 우아하게 학생들만 가르칠 줄 알았던 내가 20대에도 안 해 본 투쟁을 시작하게 된 날이었다. 악보를 들어야 할 손으로 '부당해고 철회하라' '예술가의 노동권을 보장하라'는 무시무시한 문구가 든 피켓을 들고 시위도 했고, 본관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가며 구호도 외쳤다. 

12월 22일 대지가 얼어붙은 듯 추운 동짓날, 우리는 대학본관 앞에서 첫 번째 기자회견을 가졌다. 50명에 달하는 시간강사 중 기자회견장에 나온 사람은 10명도 되지 않았다. 기자회견문을 나눠 읽는 것조차 무서워 뒤로 물러서고, 끝끝내 눌러쓴 모자 속에 숨는 모습을 보며 더 적극적으로 앞장을 서게 되었다. 시간강사법이 유예가 되면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겠다던 음대 관계자는 대화의 채널을 끊어 버렸고, 음대 측은 강사법과는 별개로 '공정하고 투명한' 강사채용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2014년에 연구실적 200점의 서류심사를 통과했던 50명의 현 강사들 중 연구 실적 100점으로 낮춰진 2015년 서류 심사를 통과한 사람은 11명에 불과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선생님들과 연주 경력이 화려한 선생님들이 대거 탈락하자 우리는 심사위원 명단과 점수 공개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게다가 일부 교수님도 거부한 오디션 결과 모 교수의 제자가 대다수 기용되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공정하고 투명한' 오디션인가? 

12월 29일 2차 기자회견 후, 우리는 천막농성에 돌입했고 석 달이 넘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요즘 유행한다는 캠핑도 싫어하는 내가 영하 17도의 추운 날씨에 천막을 지키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런데도 본부 측에서나 음대 측에서는 아무도 천막을 찾아오거나 대화 시도가 없었다. 철저한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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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음대 강사 집단 부당해고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해를 넘긴 1월 12일 3차 기자회견을 하면서 주변의 도움으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발족하게 되었다. 연대하는 다른 단체에서 천막농성을 도와주셔서 춥고 길었던 겨울을 무사히 지날 수 있었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할 뿐이다. 길고 지루한 겨울의 끝자락에 음대 측에서 만나자는 제의를 해 왔다. 가 보았더니 우리의 예상대로 다가올 졸업식과 입학식 전에 천막을 철거해 달라는 것이었다. 천막을 계속할 거라는 말을 남기고 우리는 학장실을 나왔다. 개강 후 3월 4일 천막을 철거하라는 계고장이 날아왔다. 우리는 삼겹살 파티와 공연으로 꾸민 제1차 천막난장으로 맞섰다. 그리고 3월 14일 2차 계고장이 왔다. 그러나 천막은 아직 그대로이다. 

천막농성 95일째, 행정관 앞에서 제2차 천막난장이 열렸다. 찾아와 준 학생들에게 사발면과 김밥을 대접하고 이어서 시작된 미니강연과 몸짓 공연까지, 봄볕으로 물들어 가는 서울대학교 캠퍼스에서 천막난장은 어떤 꽃보다도 아름다웠다. "울지 않고, 즐겁게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나는 학생들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서울대 성악과 시간강사들은 5월 11일 현재 135일째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천막농성 중이다. 편집자)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음대라는 특성과 학교라는 폐쇄성 때문에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항의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일련의 사건들에서 명백한 피해자인 우리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누가 도와주겠는가. 우리는 곧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계획이다. 만약 우리가 지더라도 앞으로 절대 권력이었던 그들은 이렇게 격렬하게 저항한 우리가 있었음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후배들은, 제자들은 이렇게 억울하게 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2016.05.1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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