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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Live) 10년차 시간강사의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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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구대분회 작성일20-11-03 10:12 조회4,6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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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 년간 내 공식 직업은 대학의 '시간강사'였다. 같은 기간에, 공부와 생활의 중심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였지만, 공식적인 직함은 어쨌든 대학의 시간강사였다. 사실 '시간강사'를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계약직 시급 노동자로서 16주간 고용 상태에 있다가 방학 두 달간은 실업자가 되며, 대학이 개학할 즈음에 다시 학교 당국과 16주를 계약하거나 못하거나 하는 상태를 반복하는 것이 시간강사이기 때문이다.


10년간 그렇게 지내왔다. 그동안 학생들의 등록금은 두 배 이상 인상되었고, 사업적 마인드로 무장한 대학의 서비스 경쟁으로 캠퍼스는 아름다워졌으며, 교직원들의 봉급도 일정 수준 인상되었지만 시간강사의 시급은 1원도 오르지 않았다. 얼핏 불가능해 보이는 이 사태가 그동안 가능했던 것은 대학(구체적으로는 강의를 의뢰하는 교수)과 강사 간에 맺어지는 갑을 관계의 성격, 그리고 이 직업 자체가 교수가 되기 위한 통과처 정도로만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시간 강의를 하는 사람 누구도 평생 시간강사를 하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다. 일단 교수가 되기만 하면 이 모든 불합리와 억울과 손해를 한순간에 보상받기 때문이다. 그 달콤한 가능성이 현재의 삶을 가혹하게 희생시킨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직업적 안정성이나 사회적 명예, 시간당 노동 강도 대비 임금 수준 등등을 따져볼 때 대학교수보다 좋은 직업을 찾기는 힘들다. 한국 사회가 유난히 학력·학벌의 가치를 과장하고 정신노동을 육체노동에 비해 고급스러운 것으로 오해하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는, 미국 아이비리그 중 한 대학에 근무하는 아무개 교수는 자신의 연봉보다 시내 아파트 도어맨의 연봉이 높다는 걸 한국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재계약 심사에 제출할 논문을 그야말로 미친 듯이 쓰고 있다. 미국에서 대학교수는 이혼율이 가장 높은 직업군 중 하나이다.

최근 정부가 '시간강사 제도를 없애고 시간당 강의료를 2배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시간강사란 시급을 받고 강의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제도가 없어지는데, 시급은 2배로 인상된다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1년 단위로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겠다면서 고용 안정성은 어떻게 확보하겠다는 건지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적지 않은 재원이 필요한 텐데 그 문제는 또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학력·학벌의 가치 과장하는 습속이 더 문제

이 때문에 시간강사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괜한 설레발이 공연한 등록금 인상과 시간강사의 대량해고만 불러오는 건 아닐까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아닌 게 아니라 과거 초빙교수라든가 강의전담교수 제도가 그나마 있던 시간 강의 자리도 줄여버리는 결과를 가져온 적이 있지 않았던가. 물론 시간강사에게 교원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중요하고도 시급한 사안이다.

어쩌면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시간강사 제도를 없애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학력·학벌의 가치를 과장하고 특정 직업을 신성시하거나 천시하며 그것을 개인이 지닌 능력과 혼동하는 습속이 사라지지 않는 한, 터무니없는 시급과 대우를 받고도 대학과 교수 사회에 희생과 봉사를 감내할 사람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사-시간강사 교수' 혹은 '학문-대학'이라는 단일한 계열화의 고리가 유지되는 한, 관련된 모든 정책은 미봉에 그치고 말지도 모른다.

권용선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2010.12.0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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