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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진보-보수 진영의 고액 등록금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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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구대분회 작성일20-11-03 22:28 조회4,6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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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두 진영의 고액 등록금 해법…

정치적 폭발력 우려해 사학재단 문제 부각하는 보수 vs ‘기회 평등’ 근본 원칙 주장하는 진보


  
한겨레21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여도 야도, 진보도 보수도 다 안다. 고액 대학 등록금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의 뇌관이다. 흥미로운 것은 정치적 상황 인식은 같아도 원인 진단과 처방이 제각각이란 점이다. 사립대학의 부실 경영과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는 보수는 사학의 자구 노력을 강조한다. 진보는 국가의 재정 투자 확대와 대학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강화를 제안한다. 사태의 원인이 사학의 공공성 부재와 열악한 국가 지원에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보수 언론, 정치적 사안으로 번질까 불안



논란의 시작은 지난 5월22일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내놓은 반값 등록금 추진 발언이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거센 반발이 일었다. 정책위의장을 지낸 심재철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단의) 정책 1호가 표(票)퓰리즘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고등학교 무상교육도 못하고 있는데 대학 무상교육을 하겠다니, 재원은 어디서 만들어낼 것인가.” 친이명박 직계인 조해진 의원도 “야당이 벌여놓은 판에 얹혀가는 것은 패배주의적인 것”이라고 거들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복지정책의 우선순위를 따져봐야 한다”며 “대학 등록금 문제가 고교 의무교육이나 보육, 노인복지 문제보다 더 시급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여당 지도부는 주춤했다. ‘무상 혹은 반값, 최소한 반값’(황우여 원내대표)이라던 등록금 대책이 ‘반값이 아닌 등록금 부담 완화’(5월24일 이주영 정책위의장)로, 다시 ‘체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인하’(5월25일 황 원내대표)로 후퇴했다. 당내 보수파가 6조~7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재원 문제를 집요하게 걸고 넘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당 내부의 엇박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정리됐다. 보수 신문들의 적극적인 훈수 덕분이었다.



<조선일보>는 지난 6월3일 등록금 문제와 관련된 정치지표 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국민의 70% 이상이 반값 등록금에 찬성한다는 게 골자였다. 같은 날 사회면에선 8일째에 이른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시위를 처음 보도했다. “경찰은 현재까지 학생운동 단체인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이 집회를 주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 광화문에 몰려왔던 다른 단체나 운동권이 참여해 정치집회로 변질할까 우려하고 있다”는 경찰 반응이 덧붙여졌다. 사안의 정치적 휘발성에 대한 불안감은 기사 곳곳에서 짙게 배어났다.



정치권의 반값 등록금 논의를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이던 보수 신문의 초점은 과중한 등록금 부담으로 인해 서민과 중산층 가계가 겪는 고통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6월6일부터 시작된 <조선일보>의 기획 기사 ‘대학 등록금 1000만원 시대’는 소득 상위 20% 가정도 휘청거릴 만큼 대학 등록금이 비싸다는 사실과 함께 사학재단의 무책임과 부도덕성을 집중적으로 도마에 올렸다. 일부 사립대학이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을 과도하게 재단 적립금으로 쌓아놓고 있다는 고발이 이어졌다. 반값 등록금에 대한 정치적 비판에서, 사립대학의 과도한 학비 인상과 인색한 장학금 지출, 등록금 장사로 연명하는 부실한 사학 운영이 고액 등록금의 근본 원인이라는 식으로 ‘논점 이동’을 시도한 것이다.



애꿎은 사립대 교수 집단에 불똥 넘겨



<조선일보>에 앞서 ‘프레임 전환’을 선도한 것은 <중앙일보>였다. 이 신문은 등록금 논쟁의 초기 국면인 지난 5월26일 사립대들이 수입은 줄이고 지출은 늘려 잡는 식으로 매년 결산에서 수백억원대의 차액을 남겨왔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가 분석한 26개 수도권 사립대의 지난해 교비회계 예·결산 자료를 인용한 보도였다. 같은 날 사설에선 사립대학의 ‘등록금 의존증’을 지적하며 “법인과 대학이 먼저 자구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며 “정부도 (반값 등록금 같은) 나눠주기식 지원으로 부실 대학만 연명시킬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부실 대학을 퇴출시키는 대학 구조조정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불똥은 사립대학 교수들에게 튀었다. <중앙일보>는 6월8일자 1면과 4면을 할애해 고액 등록금의 원인이 대학교수(직원)의 과도한 임금에 있다는 내용을 집중 조명했다. 157개 대학이 2009년에 걷은 등록금 10조원 가운데 5조9천억원을 교직원 봉급에 썼다는 내용이었다. 등록금 인상률(9%)을 뛰어넘는 교수 연봉 인상률(16%), 사립대 44곳의 정교수 평균 연봉이 1억원이 넘는다는 사실도 좋은 공격거리였다. 교수 집단은 순식간에 제자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흡혈 집단’으로 규정됐다.



일찍부터 사학 비리 척결과 대학 구조 개혁을 요구해온 진보 진영에선 보수 신문들이 새삼 사립대와 사학재단의 문제점을 집중 공격하는 것에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고액 등록금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정부와 집권당이 아닌 사립대와 사학재단으로 향하게 함으로써 등록금 문제가 2008년 쇠고기 촛불집회와 같은 대규모 정치 위기로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꼬리 자르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들의 의심은 정당해 보인다. 보수 신문들이 사학의 무책임과 부도덕성을 집중 공격하면서도, 2004년 사학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려고 여야 합의로 마련한 사립학교법을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이 개악한 사실에는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 당시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을 주도한 당사자는 당 대표인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보수 신문들이 주문한 등록금 문제의 해법에는 대학의 기업화·시장화를 촉진해 수익성을 강화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정부재정을 지원해 부실 사학의 생명을 연장시킬 게 아니라, 법인 자산의 수익성을 높이고 대학기업 운영과 기부금 수입을 확대해 등록금에 의존하지 않고도 사학이 자생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리다. 반값 등록금을 위한 국가 재정 투입이 내년도 선거를 앞두고 복지지출 확대 요구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정치적 셈법이 엿보인다.



진보 진영 “당장의 고통 외면해선 안돼”



혼선을 빚기는 진보 진영도 마찬가지였다. 반값 등록금이 이슈화되고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요구가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 실현으로 수렴해가던 6월 초,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정태인 원장이 ‘반값 등록금을 반대한다’는 도발적인 글을 에 기고했다. 정 원장의 주장은 “대학 입시 경쟁이 과잉인 상태에서 대학 다니는 비용을 낮춰준다면 대학에 가려는 사람이 더 늘면서 입시 경쟁이 격화돼 차세대의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 원장은 그러면서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기 위해 대학에 예산을 지원할 게 아니라 “지방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대학의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심각한 임금 격차를 줄여 일류 대학을 향한 과잉 경쟁을 줄이는 것이 대학 등록금 인상을 막는 가장 근본적인 처방”이라고 강조했다.



경제평론가인 의사 박경철씨도 “등록금 문제의 근원적 해결은 이른바 명문대학의 정원 축소를 통해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구축된 독과점 구조를 과감하게 깨뜨리는 데 있다”며 “이 문제를 외면하고 넘어간다면 이번에 반값 등록금을 제도화하더라도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고 했다. 등록금 문제의 근원이 명문대 출신의 권력 독점에 따른 학벌 구조의 지속과 이로 인해 초래된 비정상적 대학 진학열에 있는 만큼, 명문대 정원을 줄여 권력 자원에 접근할 기회를 분산시키지 않는 한 대학의 횡포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진보 진영 안에는 이들의 주장과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배적 기류는 학력 인플레와 학벌 구조의 심각성이 반값 등록금 실현의 시급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문제의 근원을 도려내는 것과 임계점에 이른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는 선후가 있을 수 없다는 데 다수의 공감대가 형성됐던 탓이다. 20대의 사회적 좌절을 주제로 활발한 기고 활동을 벌여온 엄기호 연세대 강사는 “학벌 구조 타파와 사학 개혁은 중·장기적 프로젝트에 따라 추진하면서, 반값 등록금은 그것대로 동시에 추진하는 것 외엔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도 마찬가지였다. “고교 무상교육이나 사교육 부담 해소가 선행돼야 한다는 논리는 지금 당장 서민과 중산층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들은 대학 등록금 문제는 ‘투입 대 산출’이라는 경제적 차원보다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원칙 아래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진짜 문제는 사회적 힘의 분출”



이제 공은 정치권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한나라당은 6월15일 당 등록금 부담 완화 태스크포스(TF) 주최로 공청회를 연 뒤, 19일쯤 등록금 부담 완화 방안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민주당도 대학에 기부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과 함께 여·야·정, 대학, 학생, 학부모가 참여하는 협의기구 구성을 제안한 한 상태다. 시민사회의 고민은 등록금 문제 해결을 정치권에만 맡겨둘 수 있느냐다. 논의의 장이 정치 영역으로 옮아가는 순간 이해당사자 집단의 로비와 압력이 본격화되고 정당은 각자의 이해득실을 따져 절충을 시도해, 사회적 기대에 못 미치는 누더기 해결책을 내놓는 경우를 숱하게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진짜 문제는 대학과 국가에 가해지는 사회적 힘의 문제”라는 우석훈 2.1연구소장의 발언은 경청할 만하다.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사회의 힘이 커질수록 인하 폭은 커지고, 정부나 대학이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힘이 미약하면 등록금은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오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 이유로 우 소장은 대학이란 제도가 “상품 관계나 시장 가격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회적 요소가 중층적으로 작용하는 기관”이란 점을 든다. 대학 개혁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정부가 대학을 국유화하고 대학 서열을 철폐한 것은 1968년 혁명 때 프랑스 전역을 뒤덮은 고등학생 시위로 정상적인 국가 운영이 어려운 지경에 이른 다음에야 가능했다.



이렇게 본다면 보수 신문들이 왜 “사학의 자구 노력”만을 강조하며 “반값 등록금 문제는 길거리가 아닌 정치의 장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는지도 명확해진다. 요설과 협박으로 제어하기 어려운 사회적 힘의 분출이 그들에겐 무엇보다 두려운 것이다. 

 

 

2011.06.2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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