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11.30 강사법 폐기 선언'에 대한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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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구대분회 작성일20-11-03 00:21 조회5,029회 댓글0건본문
교육부의 ‘11.30 강사법 폐기 선언’에 대한 입장
1.
우리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한교조)은 지난 7년 간 ‘강사법 제정 저지’와 ‘강사법 폐기 및 대체입법’을 위해 쉼 없이 투쟁해 왔다. 2017년에는 8월~9월 세종정부청사 교육부 앞 천막농성을 하였다. 지난 10월30일부터는 청와대 옆 청운·효자주민센터 앞에서 대학노동조합(대학노조), 교수노동조합(교수노조),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 학생단체들이 주축이 된 대학공공성강화공동대책위원회(대학공공성공대위)와 함께 24시간 철야농성을 지속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2017년 11월30일 교육부가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여 강사법 폐기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에 대해 환영한다. 나아가 이와 별도로 대학 및 강사단체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여 관련 제도 및 처우개선 등 구체적인 방안에 대하여 논의하겠다는 입장에 대해서도 원론적으로는 동의한다. 다만, 대체입법을 비롯한 올바른 대안 마련과 제대로 된 협의체 구성을 위해 우리의 입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몇 가지 밝히려 한다. 그 전에 먼저 강사법이 왜 폐기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부터 간략하게 언급하겠다. 이에 대해서는 <첨부자료1>을 참고하기 바란다.
2.
2011년 교육부는 비정규교수 당사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설계가 잘못된 법안을 정부입법발의 하였고, 국회는 이 법안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여야 합의로 이 법을 통과시켰다. 강사법(시간강사법)을 둘러싼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우리 노동조합과 교수단체 및 시민사회단체들의 노력을 통해 이 법 자체에 결함이 많다는 점을 국회가 인식한 뒤,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법을 다시 여야가 합의해 시행을 연기하는 유예 법안을 세 차례나 통과시켰다. 국회 헌정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이와 같은 조치는 설계 자체가 잘못된 강사법이 강사의 신분보장, 고용안정, 처우개선이라는 입법취지와 전혀 상반된 대량해고의 결과를 초래하는 악법이었다는 방증이었다.
강사법은 비록 시행된 적이 없는 법이었지만, 이 법이 제정된 이후에 시행을 앞두고서는 강사 해고가 수차례에 걸쳐 대규모로 발생하였다. 강사 대량해고는 매번 중복인원을 포함할 경우 9천 명~1만 명씩의 규모로 세 번에 걸쳐 일어났다. 겸임교수나 초빙교수의 수는 같은 기간 각각 4천 명씩 증가하였다. 대학들은 강사에게 들어갈 약간의 비용이라도 줄이기 위해, 우리가 2010년부터 줄기차게 비판하며 우려해 온 것처럼 강사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다른 비전임교원의 수를 증가시키고 더 많은 강사를 해고해 버린 것이다. 여러 대학들은 지금도 강사들에게 ‘학교 바깥에서 4대 보험을 해결해 오지 않으면 해고 하겠다’, ‘올해부터 시간강사는 초빙교수로 명칭을 바꾼다’, ‘내년에 저임금 겸임교수로 변경하는 데 동의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강압과 편법과 꼼수를 남발하는 대학들은 몰염치와 저열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나라 비정규교수들에게 고통을 강요하고 있는 집단은 일부 정치권뿐만 아니라 저임금비정규교수제도로 대학을 운영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는 상당수 대학재단들과 기득권동맹이다.
만약 강사법이 이대로 시행될 경우, 강사법에 적용되는 시행령의 책임시수 규정과 지금까지 대학의 행태 및 실제 교육통계치를 바탕으로 합리적 추론을 해 본 결과 2017년 현재 강사 6만5천 명의 절반 가까운 3~4만 명이 한꺼번에 해고될 것은 자명해 보였다. 이는 재앙에 가까운 고등교육과 학문 기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육성된 강사 다수가 잘못 설계된 법과 시행령에 의해 하루아침에 해고되고, 강의기회가 대폭 줄고 정규교수로의 진입은 더욱 힘들어지는 대학원생의 미래는 암울해지며, 학생들의 수업선택권은 강좌 수 축소와 강의 획일화(과도한 표준화) 및 전문성 부족에 의해 침해 당하고, 전임교원들의 노동강도는 세계 최악 수준으로 과도해지는 파국적 대학 파괴 상황 초래, 그것이 강사법이라는 폭탄의 위력이었다.
그렇기에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0월23일 오후 세종정부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출입기자단 언론간담회에서 ‘학문후속세대를 재생산하고 교육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시간강사들을 보호 육성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대로 시행할 경우 나타날 문제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고민 중이며, 통과된 강사법은 가능한 바꾸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독소조항 제거와 부작용 없는 방식으로의 강사법 개정은 여러 세력관계와 남은 시간을 보았을 때 애초부터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또다시 강사법 시행을 유예하는 것은 세 차례나 시행을 유예시킨 국회가 동의하기 힘든 선택지이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남아 있던 방법은 그대로 시행하여 파국을 맞이하거나 아니면 일단 폐기시킨 뒤 대안을 모색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리고 폐기를 선택할 경우에도 애초에 강사법이 제정된 입법취지 즉, 교원법적지위 부여, 신분보장, 고용안정, 처우개선 등의 긍정적 요소는 남기고 대량해고와 풍선효과(다른 비전임교원 증가라는 편법) 및 교수직의 비정규직화라는 부정적 요소는 제거하는 방식으로의 혁신적 대학 교원정책을 수립하는 방향 설정과 관련 기구 구성이 중요한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국회는 11월23일 강사법 공청회 과정에서 교육부의 공식입장을 명확하게 밝혀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상황에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11월30일에 ‘강사법을 폐기하고 관련 제도 및 처우를 개선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공식 선언하게 된 것이다.
3.
앞에서 언급하였듯 우리 노동조합은 현 시점에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청와대의 강사법 폐기 결단을 환영한다. 아울러 몇 가지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관련 협의체에 적극 참여하여 강사 등 비전임교원의 교원 신분과 권리 보장을 포함하는 미래지향적이고 혁신적인 대학교원정책 수립에 함께 할 것이다.
첫째, 협의체는 장관이 직접 책임져야 한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2016년 구성되었던 교육부의 강사제도개선협의체 결과는 최악이었다. 주지하다시피 기존의 문제 많던 강사법을 더 개악하는 형태로 만들어버린 소위 ‘2017 보완강사법’은 책임자와 당사자의 책무가 얼마나 중요한 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권한이 부족하고 언제 인사이동 할 지 모르는 교육부 중간 관료로는 새로운 혁신적 대학교원정책 수립을 책임지기 어렵다. 장관이 직접 협의체의 모든 회의를 주관하지는 않더라도 교육부 몫의 협의체 위원을 직접 위촉하고 초반과 중간점검 및 막판의 주요 회의에는 직접 참석할 필요가 있다. 2010년 10월 사회통합위원회가 강사 처우개선 대책을 내 놓았을 때도 소위원회 차원이 아니라 사회통합위원장이 직접 주요 사항을 챙긴 바 있다. 의지를 보여야 성과가 나온다. 개혁의 수장이 나서야 올바른 해법이 도출된다.
둘째, 위원들의 대표성과 책무성을 확보해야 한다. 위원 수는 적정하게 3(노동):3(대학):3(정부) 정도로 할 것을 제안한다. 표결해서 처리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고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논의하게 될 것이므로 인원이 많을 이유는 전혀 없다. 인원이 많으면 오히려 회의를 집중적으로 하기 어렵고 회의 자체가 형식적이거나 소모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위원이 되고나서 회의에는 거의 오지 않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2회 연속 불참 시 경고하고 다음에도 연속으로 빠지면 그 단체의 몫을 빼고 같은 지위(노동/대학/정부 중 하나)에 있는 사람으로 교체해야 할 것이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과도한 대표성을 가져서도 곤란하다. 보편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공식적인 조직의 대표성을 띤 사람들이 노동과 대학 측의 위원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래야 개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체를 대표하여 책임 있는 자세로 대안을 만들어갈 수 있다.
셋째, 협의체 운영은 빠를수록 좋다. 다만, 사안별로 결과 발표 시기는 달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는 2017년에 강사법 폐기가 확정되면 바로 협의체 구성에 착수할 것을 제안한다. 처우개선 방안은 2019년 정부예산에 당장 반영되어야 하므로 2018년 4월 발표를 목표로 다양한 비정규교수 종합대책을 수립해가야 한다. 이미 많은 아이디어가 제출되어 있다, 구체적 실현방법과 재정추계를 붙여 로드맵을 짜는 작업은 1/4 분기에 충분히 가능하다. 이와는 달리 대체입법 방안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기존의 강사법 제정 과정에서 보인 오류를 떠올려 볼 때. 관련 법령과 각종 부작용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므로 2018년 정기국회 제출을 목표로 대체입법 논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이 때 강사 등 비전임교원에게 교원으로서의 법적지위 부여, 신분보장, 고용안정, 처우개선의 기존 입법취지를 충분히 살린 대체입법안을 제출해야 할 것이다.
넷째, 협의체 운영 초반에 집중 논의하여 쟁점을 정리한 뒤, 토론회 등 내용 공개를 원칙으로 하여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정부 부처, 국회, 학생, 노동, 대학, 교수, 시민사회 등과 교감이 이루어져야 제도가 정당성을 획득하고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 입법 절차도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야 속도를 낼 수 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부터는 TV토론회나 인터넷 토론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쟁점들을 공개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나갈 필요가 있다. 사실 이미 많은 쟁점들은 2016년에 논의된 바 있기에 밀실에서 비공개로 회의를 오래 진행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협의체에 대한 장관의 책무성 담보, 위원의 대표성과 책임성 확보, 빠른 협의체 구성과 상반기 처우개선책 발표 및 하반기 대체입법안 제출, 협의 내용 공개 및 공론화 과정 진행 등을 올바른 대안 마련의 제도적 기초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교육부의 입장을 차후 확인한 뒤 우리는 협의체와 교육부에 대한 입장을 추가로 표명할 것이다. 우리는 분명 협의체 구성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2011년 강사법 제정과정과 2016년 강사제도개선협의체 운영에서 보인 교육부의 오류가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고 본다. 그래야 신뢰에 기반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
4.
마지막으로 교육부의 강사법 폐기 입장 선언에 즈음하여 국회와 대학구성원 그리고 노동진영과 시민사회에 짧은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강사법 폐기와 대체입법 및 비정규교수 처우개선은 단순히 강사 해고를 막는 것을 넘어서서 이제 이 나라 고등교육혁신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혁신은 나라를 바로 세우는 과정이라야 한다. 불투명한 공정성과 결과의 극단적 차별로 대표되는 대학사회의 병폐, 비정규교수 문제 해결은 시대적 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문제를 그대로 두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차별 해소와 인권과 4차 산업혁명과 교육혁신을 말할 수 없다. 지금까지 학생들은 미친 등록금을 내면서도, 듣고 싶은 수업도 못 듣고 콩나물 교실에서 짐짝 취급당하며 피수탈자로 내몰려 왔다. 강사들 역시 저임금불안정교수제도의 폐해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였다. 이는 헌법에 담긴 국민의 교육권과 학문의 자주성 및 교육의 전문성을 전면 부정하는 우리 대학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었다. 이제 이 대학적폐가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4차 산업혁명 대비든 평생교육강화든 급격한 사회변동 대응이든 제대로 된 교육과 학문 탐구를 위해서는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 정책’이 올바로 수립되어야 한다. 그래야 교육자와 학자가 살아남고 학문후속세대도 전망이 생기며 우리사회의 미래가 있다.
국회는 하루빨리 강사법 폐기에 관한 법적 절차를 완료해야 한다. 여야가 합의해 세 번이나 강사법 시행을 유예해 온 국회는 더 이상 이 극단적 고통을 연장해서는 안 된다. 이제 회의를 몇 차례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국회는 확실한 선택, 즉 폐기를 의결하고 기존 입법취지를 제대로 살린 대체입법을 추진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대학구성원들은 협력하여 더 나은 대학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고등교육법을 개정하든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하든 고등교육재정을 OECD 평균 수준으로 확충하고, 사학비리를 척결하며, 총장 직선제와 적정 참정권 보장 등 대학의 민주성을 높이고, 대학 내·외의 착취 받고 차별당하는 자들을 보듬어가야 진정한 ‘대학’의 구성원이라 할 수 있다. 그게 대학의 사회적 책무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대학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활동을 많은 대학구성원들이 우리들과 함께 계속해 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노동 및 시민사회에 바란다. 비정규교수 문제는 사회적 모순의 총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문제점이 농축되어 있는 사안이다. 비정규노동자의 문제, 교육과 학문의 문제, 차별과 인권의 문제, 미래사회 대비와 청년의 문제, 헌법과 사회통합의 문제 등 다양한 지점이 결부되어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줄 것이다. 범위를 좁혀 교육권과 노동권 문제로만 보아도 이보다 더 직접적인 사안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기에 비정규교수 문제에 대하여 노동진영과 시민사회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향후 협의체가 구성되고 공개토론이 진행될 때 노동진영과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
5.
1962년 시간강사제도가 대학에 도입된 지 56년, 특히 강사법 제정을 위한 교육부의 시도가 가시화 한 2010년 11월로부터 7년 간은 우리에게 그야말로 고통의 세월이었다. 열심히 공부하여 제대로 가르친 것이 무슨 죄를 지은 것처럼 여겨지고, 일회용 잉여인간처럼 취급 당하며, 마치 가축들이 살처분 당하듯 삶의 터전인 대학에서 쫓겨나는 경험을 하는 것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싸워봤지만 힘이 미약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해고로 희생되었고 때로는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나갔다. 생활은 힘겨워졌고 매학기 해고의 불안에 늘 시달렸다. 비록 우리의 노력이 가끔 주효하여 국립대학에서 강의료가 2배 가까이 인상되고 사립대학에서도 병아리 눈물만큼 임금이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생활임금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그렇기에 최근 한겨울 작은 텐트 하나로 청와대 인근에서 농성을 이어가며 극한의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이었던 우리에게, 오늘 오전 교육부의 강사법 폐기와 대안 협의체 구성 발표는 하룻밤 단잠을 잘 수 있게 기대감을 준다. 이 추운 겨울 날 따뜻하게 여겨지는 한 줄기 햇살이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 한 개피가 되지 않도록, 이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또다시 우리가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교육부와 국회가 하루빨리 해야 할 일을 하길 바란다. 그리고 강사법 폐기가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나 원점이 아니라 ‘진정한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올바른 협의체 구성 등 후속 조치를 신속하게 해 주길 바란다. 우리는 이제 가빴던 숨을 잠시 고를 것이다.
2017년 11월30일
민주노총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2017.11.3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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