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 내쫓는 학부모, 강사 내모는 대학 -한겨레 칼럼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대구대분회 작성일20-11-02 13:05 조회4,394회 댓글0건본문
훈장 내쫓는 학부모, 강사 내모는 대학
강명관/고금변증설/부산대 교수·한문학
박사과정을 마쳤으니 서둘러 학위논문을 제출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 있다. 또 어렵사리 학위논문을 썼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논문을 써서 학문의 길로 일로매진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전자는 학위논문을 쓰지 않는다. 후자 역시 계속 논문을 써 내어 자기 학문의 밭을 일구지 않는다.
전자는 학위논문을 쓰기에는 너무 바쁘다. 학위과정을 밟은 대학에서 시간강의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만으로는 생계가 해결되지 않기에 다른 대학에서도 강의를 해야 한다. 어떤 경우는 과외도 한다. 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간강의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거기에다 이 연구소 저 연구소, 이 프로젝트 저 프로젝트로 옮겨 다니며 연구비가 아닌 생계비를 벌어야 하기에 차분히 자기 연구를 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 곁에서 몇 해를 지켜보지만, 공부에 큰 진척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아 내심 답답하다. 문제는 공부하는 것을 평생의 일로 삼았지만, 그 일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대학마다 요사이 하는 말인즉 발전기금을 모은다, 세계적 대학을 만든다고 자랑이다.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그 말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자기 대학에서 가르치는 강사들을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대학의 행태는 훈장의 예조와 의자를 떼어먹는 아비들의 짓거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백범일지>는 구한말의 사회 사정을 아는 데 아주 요긴한 책이기에 자주 들추어본다. 백범이 공부를 소원하자 아버지는 문중과 동네 사람들과 의논해 상놈 아이들을 위해 서당을 열어준다. 수강료로 쌀과 보리를 모아 주기로 하고 이생원이란 선생을 초빙한 것이다. 백범은 이생원을 따르면서 열심히 공부했지만, 그는 반년이 되지 않아 해고된다. 멍청한 손자를 둔 신존위란 사람이 백범이 공부 잘하는 것을 시기해 이생원을 쫓아낸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이생원이 밥을 많이 먹는다는 것이었다. 백범이 실망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백범일지>의 이 부분에서 늘 짠하였다. 하지만 밥을 많이 먹는 것이 해고의 이유라는 것이 어딘가 우스꽝스럽기도 하였다. 한데 임형택 선생의 ‘이조말 지식인의 분화’(<전환기의 동아시아 문학>, 창작과비평사, 1985)란 논문을 읽고는 백범의 선생 이생원만 당한 일이 아니라 매우 보편적인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논문은 ‘대구훈장 원정(原情)’이란 글을 소개하고 있다. 원정이란 요즘말로 진정서다. 곧 대구의 훈장이 관에 올리는 진정서다. 무슨 진정서인가. 논문을 따라가면서 읽어 보자.
충청도의 한 선비가 서울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10년 세월을 놀다 보니 주머니는 바닥이 나고, 과거에 합격할 길도 아득히 멀어진다. 어쩔 수 없이 타관 객지 시골 서당에서 훈장으로 나선다. 그야말로 쥐꼬리만 한 보수를 받고 <사략> 첫째 권을 꼬맹이들에게 가르치노라니, 정말이지 신세가 처량하다. 한데 훈장을 초빙한, 제자들의 아비들이 “타관 양반인데, 예조(禮稠) 한 섬, 의자(衣資) 반 냥을 주지 않은들 어찌하겠느냐”며 그 쥐꼬리조차 떼어먹으려 든다. 훈장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가족들이 눈에 어른거려 다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궁한 사정을 하소연하자, 그들은 냉소를 하면서 지껄인다. “이 양반이 세상 물정도 모르는군. ‘생원의 문자’는 값이 대체 얼마요? 그동안 먹은 밥값으로 치면 될 터이지. 의자고 예조고 말도 꺼내지 마시오.” 이 말에 훈장은 관청에 진정서를 올린 것이다.
<백범일지>의 이생원이 밥을 많이 먹는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한마디 말도 못하고 해고되었듯, 대구 훈장 역시 보수를 주지 않는 학부형들에게 거세게 대거리를 하지 못하고 만다. 보수를 주는 쪽이 약자의 호소할 데 없는 처지를 십이분 이용하여 횡포를 부린 것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분들을 훈장에 견주어 대단히 송구스럽지만, 백범의 선생을 내쫓은 자와 훈장의 보수를 떼어먹은 자들이 한 짓거리가 지금의 대학이나 정부의 강사 대우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시간강사의 강의료라는 것은 말로 꺼내기에도 창피할 정도라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강의료를 올리고 신분을 보장해 달라는 요청은, 나도 20년 전에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 왜냐고? 대학과 정부가 강사들이 절대적인 약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적극 이용하기 때문이다. 전국강사노조가 있지만, 이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란 참으로 힘들다. 강사는 학기 단위로 위촉되기 때문에 그 학기에 한해서 강사 신분을 갖는다. 또 자신을 가르친 선생들이거나 아니면 이런저런 연고로 다 익히 아는 분들이 강의를 의뢰한다. 그분들의 안면 때문에 힘 있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그런가 하면 곧 시간강사를 그만두고 전임 자리를 얻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러니 강사노조에 힘이 모일 리 없다. 이런 약점을 대학은 십이분 이용하는 것이다.
먹고사는 일보다 절박한 일은 없다.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시절을 생계비 버는 데다 보낸다면, 그 뒤 무슨 정열과 힘이 남아 연구를 한단 말인가. 대학에서 쥐꼬리 같은 강사료를 받아서는 살 방도가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대학은 강사에게 정당하게 지급해야 할 강의료를 착취함으로써 자기 덩치를 유지하고 있다. 대학은 다른 어느 기관보다 도덕성이 요구되는 곳이다. 그런데 자신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의 노동력을 이토록 착취해서야 되겠는가?
대학마다 요사이 하는 말인즉 발전기금을 모은다, 세계적 대학을 만든다고 자랑이다.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그 말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자기 대학에서 가르치는 강사들을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대학의 행태는 훈장의 예조와 의자를 떼어먹는 아비들의 짓거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이 언필칭 내세우는 발전과 개혁이란 구호가 위선이 되지 않으려면, 강사 처우 문제부터 해결하시기 바란다. 그게 학문 후속세대를 키우고, 대학을 발전시키는 지름길이다.
2008.08.16 13:4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