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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노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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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구대분회 작성일20-11-02 03:51 조회5,2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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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kisa/section-008003000/2005/11/008003000200511141748599.html"학력과잉"이라고??



필자는 옛 소련의 고교 시절 학교에서 배운 ‘생산력 발달이 생산 양식의 한계를 초월할 때는 사회적 위기가 형성되어 혁명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란 말의 의미를 그 뒤 한국의 지식 생산 부문을 알면서 다시 이해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최근 1년간 약 1만여개의 박사학위가 국내외 대학에서 수여되어 박사 인구가 거의 10만명에 달하며, 기초 자연과학 등 장기간의 투자와 전통의 축적을 요구하는 분야를 제외하고 응용 생명과학·공학을 보면 국내와 국외의 질적 격차도 거의 사라지고 있다. 인문학에서는 학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하려는 최근 일부 소장파 학자들의 경향도, 학계와 일반의 경계선이 지나치게 경직된 구미지역 학계가 얼마든지 배울 만하다.


그러나 현존하는 지식 생산 구조 안에서는 한국의 자랑이라 할 신진기예들이 도저히 제자리를 찾을 수 없다. 지식시장의 독점적인 고용주인 대학교들이 1년에 2천~3천명 이상을 정식 고용하고 있지 않으며, 75% 이상을 차지하는 ‘토종 박사’보다 여전히 ‘국외 박사’를 선호함으로써 독립적인 학술적 전통의 확립을 저해한다. 미취업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동시에 몇 대학에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고 하는 ‘보따리장사’(시간 강사)와 번역, 학술진흥재단(학진) 프로젝트 용역 정도다. 이들은 생계 해결을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낸다. 저임금과 절대적 불안의 상황에서 아무리 훌륭한 젊은 학자라 해도 ‘새로운 시도와 창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보수 언론이 주장하듯 문제는 ‘학력 인플레’인가? 결코 아니다. 공업 생산이 점차 중국 등으로 이전되는 상황에서 고학력자에 의한 지식 생산이야말로 한국이 기댈 수 있는 미래 산업이지만, 한때 시장 영역에 과감히 개입하여 한국을 공업화시킨 국가·재벌이 그들의 이해관계, 인식의 한계로 박사 실업자의 창조성이 발휘될 수 있는 지식 산업의 인프라에 소홀하여 지식 생산이 저해되는 것이 문제이다. 단적인 예로 거의 6만여명의 시간강사들에게 최소한 비상근 교원으로서 신분 보장과 주당 12~14시간 이상 강의하지 않아도 될 현실에 맞는 급여, 연구비를 개인 자격으로 받을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 등이 생긴다면 그것이 강의 질 향상, 연구 활성화에 보탬이 되어 시간 강사 시절을 ‘학자적 훈련의 시기’로 만들 수 있을 터이다.


이는 단기적 이익에 눈이 먼 사립재단들이 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지식 한국’의 미래에 가장 긴요한 소장 학자 양성 차원의 대학교 비상근 교원 관련 대책은 어디까지나 국가 차원에서 세워야 하고, 거기에 필요한 재정도 상당 부분 국가가 충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온건 보수가 운용하는 국가는 학진 프로젝트를 통해 1년에 1천여억 예산을 풀어 단·중기적으로 가시적 성과를 거두려고는 해도 더욱 근본적인 문제인 비정규직 지식노동자의 사회적 안정화에 무관심하다. 미래도 안 보이는 겨우 몇년간의 프로젝트 연구원의 자리에 젊은 학자들이 감개무량할까? 바로 신자유주의적 광풍을 벗어나지 못하는 지배자들의 한계이다.


생산력의 발전이 가능해지는 새로운 생산 양식은 구시대적 지배자들이 시혜로 주는 것이 아니라 피지배자의 노력으로 쟁취하는 것이다. 젊은 학자를 질식사시키는 사회에서 소장 연구자층이야말로 반자본 투쟁의 전위가 될 만하다. 무노조 경영말고는 별다른 철학이 없는 듯한 재벌을 ‘철학 명예박사’로 대우하면서 진짜 철학을 창조할 젊은 학자들을 ‘일용잡직’으로 대우하는 자들에 의해 대학이 장악돼 있는 사회에서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노예 신세가 아닌가.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한겨레신문 2005.11.15. 

 

 

2005.11.1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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