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강사법 시행 1주년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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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구대분회 작성일20-10-11 01:26 조회9,481회 댓글0건본문
<개정강사법 시행 1주년 성명서>
개정강사법 합의 정신을 더이상 배반하지 말라
‘고등교육법 일부개정 법률안’(이하 개정강사법) 시행 1주년이 되었다. 2019년 8월 1일 시행된 개정강사법은 ‘고등교육법’ 중 강사에 관한 일부 조문을 개정하여, 열악한 조건에 놓인 강사들의 신분 안정과 처우 개선을 돕고, 나아가 고등교육 학문생태계를 활성화하자는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강사법이 발의된 2011년 이래, 당초 우리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하 한교조)은 이 법안에 거세게 반대했었다. 이 법은 이명박 정부에서 강사제도를 개악하려는 의도로 시작되어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독소조항이 누적되고 있었기에, 고등교육 정상화를 바라는 우리와 시민 사회가 적극 반대 운동을 전개하여 7년 간 세 차례 시행을 유예시켰다.
촛불정국을 거쳐 2017년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대학 강사제도 개선 협의회’를 구성하여,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 정부가 실무를 담당하고, 대학・강사대표 및 국회 추천 전문가가 참여하는 노사정 협의의 장을 마련하여, 2018년 당사자들 간의 치열한 논쟁 끝에 일정한 합의에 이르렀다. 강사 처우 개선과 지위 보장에 있어 여전히 미흡하다고 판단하였지만, 고등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하였던 점을 긍정적으로 여기고 2019년 개정강사법 시행 당시 우리는 일단 환영하였다.
개정강사법 시행 1년이 된 지금, 우리의 환영을 저버리고 대학과 정부는 합의 정신을 배반하고 있다.
합의 정신 실현은커녕, 공채를 통해 1년 이상의 임용기간을 확보하고 3년간의 재임용 절차를 보장하라는 개정강사법의 조문조차 위반하려는 현장이 있었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전공을 기준으로 공채하기보다는 강좌를 기준으로 공채하였기에, 우리는 강좌명을 변경하여 강사 재임용 절차를 무력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 공채 1년 후 재임용이 진행되는 대학에서 강좌명을 바꾸면서 강사 재임용을 거절하는 사례가 있었다. 일부 전임교원들은 자신이 비호하는 강사를 임용하기 위해, 이미 임용된 강사에게 재임용 신청을 포기하라고 압박하기도 하였다. 공채라는 형식을 통해 개별 전임교원의 강사 지배 관행을 끊고, 임용기간과 재임용 절차 확보를 통해 강사의 직업 안정을 추구하자는 합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우리가 7월에 이러한 시도를 목도하고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경고하였기에, 우리가 주목한 현장에서는 위반이 시정되었지만 미처 드러나지 않은 일들도 많을 것이다. 고등교육 정상화를 위해 대학을 관리감독해야 할 교육부는 어디에 있었던가.
이러한 일이 벌어지던 7월에 교육부 장관은 대학 총장들을 만나, 원격수업을 99%까지 허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코로나 사태를 맞닥뜨려 원격수업을 진행한 것은 비상시국에 비상대책으로서만 활용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교수와 강사들이 정상수업에 비해 몇 배의 노동을 하고도 정상수업의 몇 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교육효과를 감수한 것도, 방역을 위한 원격 수업이라는 대의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부족한 학습효과로 인한 불만으로 대학생들이 등록금환불 요구에 나선 이유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한다.
고통받고 있는 구성원들과 달리 대학 당국은 이 사태를 이익 실현의 기회로 삼으려 했다. 원격수업은 공간 제한이 없으니 수강인원을 자유롭게 증원하여, 학생들의 비정상수업에 대한 불만을 수강학점 추가 제공으로 해소하려 하는 대학도 있었다. 운영비 절감의 논리로만 고등교육을 바라본 것이다. 정상수업의 가치를 원격수업에서도 큰 손실 없이 실현하기 위해서는, 강좌를 증설하여 수강인원을 최소화하여야 하는데, 경영 논리에 조종되는 운영진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대학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원격수업을 통해 추가 비용절감이 가능하다는 틈새를 엿본 대학들은 원격수업 본격화에 나섰다. 이 잘못된 방향에 일방통행 신호등을 달아주려는 교육부는 대학 경영진의 편에 선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경영이익이 아니라 교육 효과의 측면에서 고등교육을 생각한다면, 교육부는 최대한 정상수업이 가능하도록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한다. 21세기 대학생들이 20세기 콩나물처럼 앉아 있는 대형 밀집강좌를 금지하고, 충분한 거리두기가 가능한 소규모 강좌를 확대하도록 규정 개정과 재정 지원을 포함하는 긴급 정책을 펴야 한다. 소규모 강좌가 고등교육의 기본 모델로 정착되도록 이번 기회를 활용한다면, 방역과 고등교육 정상화의 거대한 두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성취를 얻게 될 것이다.
개정강사법 시행 1년이 된 오늘까지 대학과 정부는 강사들과 합의한 내용을 저버리고 후진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고등교육기관에서 연구하고 강의하는 우리 강사들이 밟힌 것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짓이기고 고등교육이 후진하여 결국 무저갱에 빠져가고 있음을, 그 추락의 피해를 우리 사회가 고스란히 안게 될 것임을 슬퍼하는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대학과 정부가 방향을 바꾸기를 바란다. 개정강사법의 합의 정신을 실현하고, 나아가 학문생태계가 제 기능을 수행하여 미래 전략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진전된 정책을 요구한다.
1. 보건복지부와 협의하여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직장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
2. 노동부와 협의하여 퇴직급여보장법 개정하고 퇴직공제제도 도입하여 안정적 퇴직금을 보장해야 한다.
3. 공채와 재임용 과정에서 불법 탈법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학에 대한 관리 감독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4. 방학중 임금을 정상적으로 지급할 수 있는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여야 한다.
5. 원격수업 99% 허용 선언 철회해야 한다.
6. 원격 수업이 불가피할 경우, 분반을 통해 강좌를 증설하고 수강인원을 최소화하여야 한다. 대형밀집강의를 금지하고 소규모 강좌가 기본 제도로 정착되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7. 소수 학문 분야가 대학에서 축출되지 않도록 강좌 다양성을 확대해야 한다.
8. 공익형평생고등교육사업을 통해 시민들과 고등교육의 성과를 공유하고, 강의 기회를 상실한 강사들에게 다시 복귀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9. 강사들에게 교원으로서 대학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다.
10. OECD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전임교원확보율을 정상화하여야 한다. 학령인구감소를 전임교원확보율 정상화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11. 공영형 사립대학을 도입하여, 비용 절감 논리로 치닫는 사립대학들을 통제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12.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하여 고등교육 정상화에 적극 투자하여야 한다.
2020년 8월 5일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2020.08.0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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