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와 소식

언론 보도 > 정보와 소식 > 홈

언론 보도
언론 보도 게시판입니다.

언론 보도

온 대학 상놈 되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대구대분회 작성일20-11-05 16:37 조회6,055회 댓글0건

본문

[경향신문] 올해 국회에서 새로운 강사법이 통과될 예정이다. 이 법에 따르면 강사당 학기별 최대 6시간,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9시간 수업을 맡겨야 한다. 1년 단위로 계약해서 최대 3년을 보장해야 하고, 방학 중 급여를 지급해야 하며, 퇴직금도 마련해야 하고, 보험에도 가입해주어야 한다. 학문 후속세대에 최소한이나마 안정적인 교육과 연구 환경을 마련해주어 학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벌써 엉뚱한 효과가 나타날 조짐이 보인다. 대학이 인건비 상승이 예상되자 이를 사전에 막고자 온갖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우선 교원확보율에 해당되지 않는 강사는 현 계약기간이 끝나면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 대신 전임교원이 담당하는 강의를 늘린다. 이를 위해 강사 비율이 높은 학과에 불이익을 준다. 또한 개설 강좌 수를 대폭 줄이기 위해 졸업에 필요한 필수 학점 수도 낮춘다.

이러한 소문이 실제로 실행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추가 예산지출이 없기에 당장 대학 생존에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학문의 재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가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많은 강사들은 생계는 말할 것도 없고 학문할 수 있는 여건을 잃는다. 대부분 본교 출신의 강사들은 자신을 키워낸 대학에서조차 설 땅이 없다. 이를 바라보는 후배들은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할 뜻을 접는다. 대학원 나와 봐야 교수가 되기는커녕 당장 활동 공간도 없기 때문이다. 대학원이 텅텅 비어간다. 학문을 논할 제자가 없으니 교수도 공부를 게을리한다.

전임교원은 엄청난 강의 부담에 시달린다. 1주일에 5과목, 6과목, 7과목 거의 무제한으로 강의를 해야 한다. 강의 시수와 수강학생 수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 과중한 강의 시간 탓에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리 없다. 게다가 개설 강좌가 줄어들어 모든 강의가 도떼기시장처럼 벅적거린다. 강의하느라 연구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외국 학자들이 해놓은 연구를 요약해서 ‘얕고 넓은 지식’을 전달하는 지식소매상으로 추락한다.

이렇듯 대학이 생존주의자로 전락하는 사이 학문 후속세대의 재생산은 완전히 물 건너간다. 실제로 인건비를 줄여 생존하려는 노력은 신임 교수를 뽑지 않는 사태로 나타나고 있다. 정년퇴임을 해도 새로 교수를 충원하지 않는다. 취업에 별 도움이 안되는 것처럼 보이는 학과가 말라죽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새로 오는 자는 새로운 희망을 가져온다. 새로운 교수가 와야 대학도 활력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예 그 싹을 짓밟는다.

이제 대학의 목적은 생존이다. 많은 사람들은 저출산과 학령인구의 감소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마냥 이러한 사회구조의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도대체 누가 대학을 생존주의자로 몰아가는가? 손에 손을 맞잡고 취업 문제를 대학에 떠넘긴 국가와 기업이다. 국가는 국가보조금을 한 손에 쥐고 또 다른 손에는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르면서 대학을 겁박하고 있다. 정원을 줄이고 취업훈련소가 되라고. 기업 역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산업인재를 키워내라며 대학을 압박한다.

기업은 사실 부모가 20~30년간 자녀에게 쏟아부은 인적 자본의 최후의 수혜자다. 별다른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열매를 마구 따먹는다. 사회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사람에게 투자하지 않고, 써먹지도 않을 온갖 스펙을 요구해서 대학교육을 황무지로 만든다.

사정이 이러하니 대학이 학문의 탁월성을 추구할 수 없다. 단기성과를 내라는 경영 언어에 휘둘려 눈앞의 생존에 매달린다. 하지만 묻자. 진정,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삶’에서 우러나온 문제를 붙잡고 ‘우리의 언어’로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남의 삶’에서 나온 ‘남의 이야기’를 주워섬기며 ‘제 이야기’인 양 우쭐대는 허깨비가 수두룩하다. 이런 비판을 하면 제 밥그릇 챙기기 급급하다며 ‘교레기’ 취급이나 받겠지. 나는 또다시 우울한 상념에 사로잡힌다. 이러다가 온 대학이 다 천해지면 누가 귀한 일을 맡아서 할까?

https://news.v.daum.net/v/20181004211116825?f=m 

 

 

2018.10.05 12:0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